25년 된 구형 프라이드를 떠나 보내며

by H.F. Kais | 2016. 5. 30. | 0 comments

이제서야 글을 남깁니다만, 지난 2월에 이미 구형 프라이드를 팔았습니다.

 

이 차는 1990년 5월에 처음 등록된 기아 프라이드 DM 은색입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카뷰레터 방식의 1300cc 엔진을 얹었고요, 5단 수동기어, 노파워 스티어링, 앞좌석 전동윈도, 에어컨 등을 갖춘 나름대로 상위트림 차량이었습니다.

저 아랫녘에서 친척이 출퇴근용으로 쓰던 걸 얻어와 아버지와 제가 탔습니다. 한동안 주차장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제가 본격적으로 몰고 다닌 지는 5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단순한 자동차입니다. 달리고, 서고. 그 뿐입니다. DM이면 당시로선 상위트림이긴 하지만 편의장비는 지금 기준으론 정말 기본적인 것들만 있었습니다. 다른 데 신경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차가 작고 가벼워 운전이 무척 쉬웠습니다. 별도의 보조장치가 없는 속칭 '노파워' 스티어링 이었지만 운전이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운전을 이 차로 시작한 탓이겠지요. 사촌형들은 이 차의 핸들을 힘들어서 못 돌리겠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아직도 구형 프라이드가 길에 꽤 보이지만 정비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부품을 구하기가 어려운 탓이었죠. 소모품류, 구동계 쪽은 부품을 구하기 쉬웠지만 내장재나 외장재, 자잘한 부품들은 오히려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폐차장 뒤지는 것도 녹록지 않았고요. 차를 돌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전에 소개한 적 있는 2천원짜리 도어 안쪽 손잡이가 늘 말썽이었습니다.

 

도로에선 다른 차에게 방해가 되기 싫어 꽤 밟고 다녔는데(그래 봐야 흐름에 겨우 끼는 수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비는 10km/L 전후로 꾸준히 나와주었습니다. 고속도로나 장거리 운행이 거의 없이 가까운 거리만 다녔는데도 이 정도입니다. 작정하고 연비운전을 했다면 아마 12km/L 이상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소형차이지만 좁다는 느낌도 그리 안 들었습니다. 해치백 특성상 트렁크는 좁았지만, 실내는 꽤 넓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만 오래된 차인지라 영 힘을 못쓰는 에어컨과 시끄러운 소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카센터에 갈 때마다 주변에서 여러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차가 아직까지 다니냐, 웬만하면 바꿔라, 대단하다 등등. 그래도 공통적으로 '참 잘 만든 차'란 소리는 꼬박꼬박 듣고 다녔습니다.

 

 

혼자만 타는 차라면 얼마든지 더 타고 싶었습니다. 멋지게 리스토어 해서 타는 꿈도 꾸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연식도 너무 오래되었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나 혼자 타는 차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가끔은 할머니도 모셔야 했죠. 고급 세단까진 아니어도 가족이 함께 탈 차가 필요했습니다. 고집 피울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침 오무기어(웜 기어) 쪽을 교체할 일이 생겼고, 여기에 더해 병원에도 왔다 갔다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그나마 연식이 덜 된 중고차를 구입했습니다.

 

25년을 굴러다닌 구형 프라이드는 폐차할 예정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등속조인트를 교체해서 구동계는 쌩쌩했지만, 설마 이걸 누가 사갈까 싶었지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중고차를 배송하러 온 딜러가 관심을 보였습니다. 폐차해 버리기엔 상태가 괜찮다나? 이 프라이드는 어떻게 할거냐고 묻더니, 폐차하지 말고 자신에게 팔라네요. 고쳐서 탄다고요. 정말 본인이 탈 건지 아님 다시 정비해 팔 건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고철덩이가 되는 것보다 어떻게든 굴러다니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딜러는 제가 산 중고차를 끌고 내려와 다시 제가 판 프라이드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불안해서 못 타겠다며 운전을 꺼려했지만, 나에겐 사실상 첫 차인지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잘 탔습니다. 개인 SNS 여기저기에 구형 프라이드와의 추억이 쌓여있네요. 블로그에도, 트위터에도, 페이스북에도, 구글 포토에도 여기저기 쌓여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떠나 보냈지만,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전에 쓴 구형 프라이드 관련 글 보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

- 스팸 방지를 위해 보안문자(캡차) 확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스팸댓글이 너무 많이 달려 댓글 검토 기능을 쓰고 있습니다. 입력하신 댓글이 당장 화면에 나타나지 않아도, 블로그 주인장은 댓글을 보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검토가 완료되면 댓글이 게시됩니다.

덧글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스팸방지를 위해 '단어확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