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구가 새로 구입한 리코 GR을 구경했다. '스냅샷에 최적화 된 똑딱이 카메라' 라고 많이 들어왔지만, 실물을 보니 더욱 놀랍다. GR에 대한 느낌을 몇 줄 적어본다.
첫인상
한 손에 잡히는 느낌이 굉장히 좋다. 작고 가벼운 카메라임에도 그립 부분이 손에 착 감긴다. 옛날 35mm필름 시절부터 GR시리즈를 만들어오며 생긴 리코만의 노하우일 것이다. 촬영을 위한 버튼도 대부분 한 손으로 조작이 가능하다. 요컨데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전원을 켜고 촬영값을 맞추고 셔터 버튼을 누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한 손만으로 충분하다.
기능을 중시하면서도 상당히 매력있는 디자인이다. 전체적인 비율도 좋고 검정색의 표면도 까끌까끌하니 촉감이 좋다. 싸보이거나 가볍거나 허술해보이지 않고 단단한 느낌이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보면 볼 수록 예쁜구석이 더 많은 디자인이다.
색감
오래 두고 이런저런 사진을 찍어봐야 평가할 수 있겠지만 당장 봤을 땐 굉장히 차분한 색감이다. 펜탁스의 색이 진득함 속의 화려함이라면, GR의 색은 무게감 있는 사실적인 표현에 중점을 둔 것 같다. 과장없이 있는 그대로 깊은 느낌을 보여준다. 도시의 스냅사진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색감이다. 여기에 환산 약 28mm 화각의 고정식 단렌즈가 더해져 디테일한 사진을 만들어 낸다. F2.8의 조리개는 최대개방에서도 흐트러짐이 없고, 접사도 괜찮다. AF는 조용하고 빠르며, 한 컷 한 컷을 찍는 느낌이 아주 좋다. 35mm 필름 대비 1.5x 크롭사이즈의 1600만화소 센서는 웬만한 DSLR들 못지 않은 이미지 품질을 보여준다.
사용자 중심
철저히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된, 스냅샷에 대한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펼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작은 카메라의 구석구석에서 그러한 부분들이 엿보인다.
똑딱이임에도 불구하고 스트랩 고리가 무려 3개나 된다. 좌우 위쪽에 하나씩, 그리고 오른쪽 하단(배터리 커버쪽)에 하나가 또 있다. 넥스트랩을 쓸 때는 좌우 위쪽에 끼우면 되고, 간단한 손목스트랩을 쓸 때는 오른쪽 하단에 끼우면 기능적으로나 미적으로나 아주 깔끔해진다.
모드 다이얼에는 락버튼도 달려있다. 다이얼을 그냥 돌리면 돌아가지 않는다. 락버튼을 눌러야 찰칵찰칵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간단한 기능이지만, DSLR들 중에서도 중고급 DSLR에나 채용되는 기능이다. 아마 주머니에서 꺼내 사진을 찍을 때 모드 다이얼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걸 막기 위해 달았을 것이다. 흔한 똑딱이가 아닌 '스냅에 최적화된 똑딱이'라 할 수 있는 이유다. (카메라는 처음 작업해 봤다는 디자이너가 작업한 K-01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GR과 비교해보니 K-01의 모드 다이얼과 그린버튼이 아주 못나보인다)
비교
리코 GR의 가격은 약 100만원 전후(2013.11 기준). 경쟁모델로는 후지 X100s나 소니 RX100 Mk2 등이 손꼽힌다. 모두 '똑딱이'의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대형 센서와 밝은 렌즈를 채용해 'DSLR 못지 않은' 사진을 뽑아주는 걸로 유명한 모델들이다. 친구는 RX100과 저울질하던 중 GR을 직접 만져본 뒤 바로 GR을 선택했다고 한다.
지인중에 X100유저와 X100s유저가 각각 있어 그 둘도 만져볼 기회가 있었는데, X100s와 비교해 본다면 당연히 GR을 선택할 것 같다. 더 작고 가볍고 빠르고 부담없기 때문이다. 다만 두 모델의 지향점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비교할 때 그 지향점을 잘 따져본다면 선택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GR은 확실히 기능중심이다. 물론 모양도 이쁘긴 하지만 이건 부수적인 문제다. '사진을 찍는 것' 에 중점을 둔다면 GR을 선택하는게 좋다. 하지만 액세서리로서의 역할까지 염두에 둔다면? 그땐 X100s 쪽에 더 많은 점수를 줘야 할 것이다. 후지의 레트로 디자인은 간결하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약간 더 무겁고 약간 더 불편하지만, 가죽으로 된 속사케이스를 씌워 목에다 건다면 그 이상의 패션아이템도 없다(GR을 목에 건다면? 상상에 맡긴다).
총평
리코 GR에 대한 느낌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최고의 기능성을 추구하다보니 디자인은 알아서 따라오더라"
리코 GR은 옆에 있는 카메라를 못나보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당장 그 어떤 똑딱이 카메라를 옆에 가져다 놔도 리코 GR보다 이쁠 것 같진 않다. 그리고 전원을 켜 사진을 찍어보면 그 느낌은 확신이 된다. 물론 다른 카메라들도 좋지만, 리코 GR은 훌륭하다. 범위를 좁혀 스냅사진으로 한정한다면 그 훌륭함은 절대적이다. 리코 GR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래도 내 K-01은 반 값도 안되니까, 앞으로 K-01을 더 이뻐해 주어야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 스팸 방지를 위해 보안문자(캡차) 확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스팸댓글이 너무 많이 달려 댓글 검토 기능을 쓰고 있습니다. 입력하신 댓글이 당장 화면에 나타나지 않아도, 블로그 주인장은 댓글을 보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1~3일 내에 검토가 완료되면 댓글이 게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