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by H.F. Kais | 2013. 12. 31. | 0 comments

※ 스포주의 – 까지는 아닌 거 같지만, 아무튼 내용 일부가 적혀있으니 아직 작품을 안 본 분이라면 주의

연말이 되면 난무하는 각종 술자리 모임은 나같이 술 약한 사람에겐 고역이다. 그래도 간간히 술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될 때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어쩌다 보니 한 해를 공연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사실 나는 각종 문화행사 경험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극장에서 처음 영화를 본 게 중학생 때였으니, 사는 지역 탓도 있겠지만 별로 관심 자체가 없었나 싶기도 하고... 대신 무경험으로 인해 기대치가 워낙 낮다 보니 일단 보면 대부분 재미있게 잘 보는 편이다.

한때 연극이나 독립영화도 꽤 보긴 했으나 이제와 기억나는 것도 거의 없고, 어디 잘 적어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 기억이라는 게 이렇게 형편없을 줄이야. 아무튼 연극이나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뮤지컬은 관람 경험이 전무한데, 우연히 볼 기회가 생겼다. 작품은 '벽을 뚫는 남자'.

평범한 우체국 직원인 소시민 '듀티율'이 어느 날 벽을 뚫는 능력을 얻게 되면서 생기는 사건들을 다뤘다. 그런데 얼핏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을 갖게 된 일반인이 각종 사건을 일으키고 끝내는 그 능력 때문에 해피엔딩 or 새드엔딩'.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 봤나? 어린이 세계명작전집에서 봤나? 초능력을 없애기 위한 처방이라던가 비극적인 결말 등이 매우 낯익다.

이날 캐스팅은 아이돌 그룹(!) 신화의 김동완이었는데, 이미 '힘내요 미스터김' 같은 드라마를 통해 많이 봐온 터라 어색하지 않고 괜찮았다. 딱 어울리는 배역이랄까. 노래도 생각보다 괜찮은데, 다만 이게 외국 원작이라 그런지 템포가 빨라서 그런진 몰라도 굉장히 말이 빠른 느낌이었다. 솔직히 가사 일부는 잘 못알아 들었다. 빠른 전개나 신나는 템포도 좋지만 가사 전달에 좀더 신경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히 이야기 자체가 복잡하진 않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는 게 어렵진 않았다.

그런데 전반적인 내용의 중간을 한 뭉텅이 들어낸 느낌이 든다. 주인공 듀티율이 벽을 뚫는 능력을 발견한 뒤 이런저런 사건을 일으키는데, 어느새 갑자기 시민의 영웅이 되어있다. 글쎄, 내가 본 건 빵집 털고, 보석상 털고, 은행 털고, 달밤에 슬퍼하는 늙은 창녀에게 목걸이 걸어준 게 다였던 거 같은데... (검사의 비리를 밝히기 전부터) 시민들이 듀티율을 영웅이라 칭하면서 편들고 있다. 개연성이 부족하달까. 원작도 그런지, 아님 생략된 것인지 궁금하다.

흥미로웠던 건 단 4명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노래 반주랑 꽤 신기하게 잘 만들어진 무대 세트. '벽을 뚫는 남자'를 표현하기 위해 꽤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설마 종이로 벽을 만들어 찢고 다니나 싶었는데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다만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살짝 위험해 보이긴 했다.

반주용 악기로 피아노, 플룻(등의 관악기), 타악기 정도가 있었던 거 같은데, 단 4명이 피아노치고 북치고 장구치고 피리불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한 켠에서 악보만 겨우 보일 정도의 조명만 켜고 피아노를 치는데 그 와중에도 현란한 손놀림이 다 보였다. 타악기 연주자는 연기자의 타이밍에 맞춰 실로폰이나 트라이앵글, 휘슬 같은 걸 연주했는데 타이밍도 그렇고 다루는 악기 수가 정말 대단했다. 대충 봐도 열 가지는 넘어 보였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4명의 연주자가 20여 개의 악기를 다뤘단다. 굉장하다.

이 공연은 트리플 캐스팅으로 '아빠 어디가'의 이종혁과 마이클 리, 그리고 김동완이 번갈아 출연했다. 그런데 공연 전 몇몇 관객들이 아쉬워 하는 소릴 들었다. 이종혁 캐스팅으로 보고 싶다나. 하긴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살짝 궁금하긴 하다. 이래서 매니아들이 같은 작품을 캐스팅만 다르게 여러 번 보는구나 싶었다. 특히 인상깊었던 역은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창녀' 역과 '(듀티율의 감옥에 찾아가는)우체국 여직원' 역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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