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컴플리시테의 라이온 보이

by H.F. Kais | 2015. 3. 16. | 0 comments

오랜만에 공연 관람, 이번엔 연극이다. 그런데 공연장이 늘 가던 대학로가 아니라, 남산에 위치한 국립극장이다. 이날 본 작품은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2014-2015 라인업 중 하나인 '컴플리시테의 라이온보이(Lion Boy)'. 영국 컴플리시테 극단의 창설 30주년 기념작품이며, 이 극단의 가장 최신작이고, 심지어 이 극단의 최초 방한 작품이다.

나에게도 이래저래 최초의 수식어가 많이 붙은 관람이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그 큰 곳에서 연극을 본 것도 처음, 그렇게 많은 관객과 함께 연극을 본 것도 처음, 외국 오리지널 팀이 외국어로 공연하는 걸 본 것도 처음, 연극을 자막으로 본 것도 처음, 외국 공연을 처음 접했으니 당연히 영국의 연극도 처음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애초에 이런 쪽으론 깊게 관심이 없으니 지식도 없고, 지식이 없으니 약간의 관심도 없고...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나마 친구 잘 둔 덕에 이따금씩 괜찮은 공연들을 접하게 되어 고마울 뿐이다.

 

팜플렛에 적힌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과학자인 부모를 따라 아프리카를 가게 된 찰리는 실험 중이던 시약에 노출돼 고양이 언어를 이해하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런던으로 이사와 평범한 일상을 살던 중, 찰리의 부모가 괴한들에게 납치되고, 찰리는 스스로 부모의 행방을 찾기로 결심한다. 우연히 들어간 서커스단에서 사자 돌보는 일을 맡게 된 찰리는 '라이온보이'로 불리게 되는데..."

간단히 하자면 '고양이의 언어를 알게 된 소년이 악당들에게 납치된 부모님을 찾아 떠나는 모험' 정도랄까. 이야기 자체는 어찌보면 살짝 진부할 수도 있는 내용과 설정이라 생각된다.

재미있는 건 그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배우들의 연기. 시작부터 무대를 뛰어다니며 서로의 실명을 소개하더니, 마치 이야기를 해주듯이 연기를 풀어나간다. 주인공을 제외하곤 1인 다(多)역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8명의 배우가 모든 등장인물을 연기하고, 1명의 단원이 음악과 다양한 효과음을 담당한다. 크고 복잡하며 화려한 무대장치도 거의 없다. 가령 거대기업 코퍼러시 사의 거대한 철벽은 여러 개의 사다리로 표현하는 식. 자잘한 소도구와 배우들의 연기가 다양한 인물, 다양한 상황을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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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포스터를 보고 주인공이 흑인인게 놀라웠는데, 작중에서도 그런 부분이 나온다. 함께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의외로 이쪽 계통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난 단지 '(인종이 상관없는) 주인공 캐릭터' 에 '발탁된 배우가 단지 흑인' 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예 주인공 캐릭터 자체가 흑인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사실 해오름극장이 너무 크기도 하고 내 눈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주인공의 얼굴을 보기는 어려웠다. 딱 하나, 주인공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데 그의 이름은 '마틴 임항베(Martins Imhangbe)' 라고 한다. 처음 배우들끼리 소개할 때 유독 그 이름이 귀에 박혔다. 뭔가 한국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임항배 씨?

마틴 임항베의 잘 나온 사진은 여길 참조.
http://londonist.com/2014/12/back-with-a-roar-lionboy-at-tricycle-theatre.php


살짝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끝에 던지는 메시지는 꽤 구체적이며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외치는 동물과의 공존조차 인간의 이기심에 치우쳐져 있진 않나? 기업이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연극 속 코퍼러시 같은 기업들을 우리는 그냥 지나치고 있지 않나? 연극은 이렇게 메시지를 던져놓고 그 해답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주인공 찰리 아샨티의 엄마가 해주는 말,
"Nullius in Verba" - 있는 그대로 믿지 말라.

사실 라틴어로 된 이 말은 영국 왕립 자연과학학회(Royal Society)의 모토이다. 누구의 말에도 의지하지 말고, 모든 것을 의심하며, 자신이 직접 확인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아마도 아샨티의 부모는 왕립 학회의 회원일지도... 하긴, 연구 때문에 거대기업에 납치될 정도면 회원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 듯.)

자연과학의 연구에 있어 저 말은 진리로 통용될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무엇을 믿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다. 누군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실과 진의는 왜곡되기 쉽고 허위와 거짓은 쉽게 퍼지는 세상이다. 항상 저 말을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결코, 있는 그대로 믿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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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정보 : http://www.ntok.go.kr/user/jsp/ua/ua01_1db02v.jsp?pfmc_inf_idx=1202&year=2015&month=3&day=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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