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와 함께 한 2015 퀴어문화축제

by H.F. Kais | 2015. 7. 4. | 1 comments

지난 6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간의 결혼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6월 28일로 예정된 제16회 퀴어문화축제 폐막식 및 퍼레이드를 앞두고 굉장한 타이밍이었지요. 마침 성소수자인 친구가 이날 축제에 간다길래, 축하 겸 응원 겸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전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굉장히 무지했습니다. 아예 관심조차 없었달까요. LGBT(레즈,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몰랐습니다. 다행히 아래 사건(?)을 계기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제 친구들을 더욱 존중하며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럭저럭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연애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말이 연애상담이지 사실 고민, 푸념 들어주기나 다름없었지요. 제 딴에는 열심히 들어주고 달래주면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남(여)자는 원래 그래~' 식으로 신나게 이야길 하다, 한참 뒤 친구가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근데 걔는 남(여)자도 아니면서 왜 그러지?'

아뿔싸. 망치로 머리통을 쾅 내려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의 연애고민을 들어주던 많은 시간 동안, 저는 그의 애인이 당연히 이성일 거라 생각해왔던 겁니다. 동시에 친구에게 굉장히 미안해졌습니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심지어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친구는 저에게 조심스레 커밍아웃을 했고, 그 뒤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퀴어축제에도 함께하게 된 것이지요.

 

호기롭게 나도 퀴어축제에 가겠노라고 했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조금씩 염려가 들었습니다. 나처럼 아무나 가도 되나? 반대세력의 방해집회가 거세던데 별 일 없을까? 하지만 뭐, 내 친구가 나에게 당당한데. 내가 친구에게 힘이 된다는데. 친구만 믿고 가자!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래부터는 사진이 많습니다. 개인 얼굴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역시나 광장 주변으로 반대세력의 방해집회가 거셌습니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쫄았습니다. 시청건물 바로 앞, 덕수궁 대한문 앞, 프라자호텔 앞까지 광장을 빙 둘러싸고 개신교 단체들이 가득했거든요.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할 쩌렁쩌렁한 스피커 소리, 나부끼는 각종 깃발, 수많은 사람들이 혼을 쏙 빼놓았습니다.

 

이날은 해가 꽤 강했지만 아랑곳 않고 열심히 반대와 아웃을 외치더군요. 화제가 되었던 북춤과 발레도 구경했습니다.

 

날씨가 꽤 좋아 다행이었습니다. 해가 강했지만 따가울 정돈 아니었고 간간히 구름과 바람이 시원했습니다.

 

위에도 썼지만 반대세력과의 충돌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울타리가 쳐져 있어 크게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허나 나중에 트위터를 보니 안타깝게도 반대세력에 의한 폭력 피해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여기저기 부스를 구경하다 반가운 로고를 발견했습니다. 매년 구글 한국 블로그에서 퀴어축제 소식을 봤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참가했네요. 워낙 사람이 많아 자세히 구경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안드로이드 에코백을 팔고 있었더라고요. 그걸 못 사고 온 게 한입니다. 관련 글: 2015년 퀴어문화축제 - 구글이 한국 성 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합니다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북유럽 4국 대사관의 부스가 눈에 띄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괜히 선진국이 아니네요.

 

이번에 동성간 결혼 합헌 결정을 내린 미국의 부스도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시끌시끌해서 뒤돌아보니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가 지나가고 있더군요. 얼굴에 길게 남은 흉터가 안타깝네요.

 

여러 부스에서 물건도 팔고, 모금도 하고, 홍보물도 나눠주는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졌습니다. 대학생들의 당당한 모습이 멋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앉아 무대 위 공연을 구경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축제에 오기 전엔 '나처럼 아무나 가도 되나?' 싶었지만 막상 와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왔더군요. 연인, 친구, 가족, 외국인, 코스프레하는 사람(베지터!), 심지어 다양한 동물들까지 모두 모였습니다.

 

일본의 도쿄레인보우퍼레이드라는 곳에서도 응원차 왔다네요. 회색 정장을 입은 사람은 일본 도쿄 도시마구의 구의원인 '이시카와 다이가' 라는 분인데, 일본에서 커밍아웃 후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최초의 의원이라네요. 관련기사 :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인터뷰] 일본의 첫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의원 '이시카와 다이가'

 

마지막엔 퀴어 퍼레이드 행사도 있었다고 하는데, 일정상 일찍 돌아오느라 아쉽게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사진들을 보니 꽤 재미있었던 거 같네요. 다음엔 친구들과 함께 퀴어 퍼레이드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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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1. 조금 오래되었지만 나도 어떤 친구를 통해 그들과 술자리를 하며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던 적이 있는데 처음엔 두려움같은게 있었지만 얘기 나누다보니 다 똑같은 사람이더라고..
    오히려 겪어왔던 다수의 사람들보다 훨씬 인간적이기도 했고.
    마냥 색안경 끼고 대할 필요는 없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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