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한 친구와 만나 '2014 퓰리처상 사진전'에 다녀왔다.
사실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발걸음은 아니었다. 특히 보도 쪽 사진전은 늘 비슷비슷하지 않은가.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 불치병에 고통 받는 환자들, 죽음과 삶을 가르는 찰나의 순간들, 잔혹한 사고의 모습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할 거 없이 반복되는 부조리한 일들과 피해자들.
단지 얼마의 관람료로 그들에 대한 관심과 예의를 다했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의 아픔과 슬픔, 잔혹한 현실마저 '소비'되고 있는 건 아닌지, 가슴 아픈 공감과 관심인지, 아니면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 건 아닌지. 여러 가지 불편한 생각들이 자꾸 겹쳤다.
물론 그러한 사진을 찍은 사진가들이나, 언론이나, 전시를 연 회사를 비난하자는 건 아니다. 불편한 생각들은 나 스스로에 대한 것이다. 과거의 역사들, 어떤 사실들, 누군가의 현실을 단지 보고만 말면 땡인가? 사진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생생히 보고, 간략히 적힌 몇 줄의 코멘트를 읽으며 '아~ 그렇구나~' 하고 말면 다인가? 어떤 형태든 나 스스로가 영향을 받아야 하지 않나? 조금이나마 나는 변했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중 하나가 하필이면 전쟁이라니.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관람을 시작했는데 의외의 부분에서 전시의 재미를 찾았다. 다른 사진전에선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수상작 옆에 붙여둔 코멘트 말미에 촬영정보를 적어둔 것. 카메라 기종, 렌즈, 셔터스피드, 조리개, 감도 그리고 사용된 필름 등을 적어두었다. 요즘으로 치면 디지털카메라 사진의 EXIF 정보 같은 거다. 물론 100%는 아니고 알려진 정보들만 적혀있었는데, 그래도 꽤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세계 최고의 사진기자들이 촬영한 사진의 촬영정보라니, 쉽게 보기 어려운 것 아닌가.
40년대에서 60년대 쯤엔 대부분 4x5 판형 카메라와 흑백필름이 쓰였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네모난 주름상자 카메라 말이다. 그러다 70년대~80년대를 거쳐 90년대엔 35mm SLR 카메라가 주로 쓰인다. 니콘의 SLR이 많이 쓰였고 필름은 코닥이 자주 쓰였다. 특히 코닥의 트리플X 필름은 꽤 많은 수상작에서 사용되었다. 아마도 그 시대 사진기자들의 필수품 아니었을까. 바디를 따라 니콘 렌즈도 많이 쓰였는데, 의외로 니콘 20mm 렌즈가 꽤 많이 보였다. 특히 종군기자들이 애용하는 것 같았다. 물론 수상작에 한정되긴 하지만, 35mm나 50mm보다 자주 보인 게 의외였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디지털카메라가 쓰이기 시작했다. 이땐 재빠르게 디지털카메라 시스템으로 전환한 캐논이 득세한다. 많이 쓰인 렌즈는 16-35mm나 70-200mm 같은 필수화각 렌즈들. 과거 필름사진들과 비교해보면, 5D 마크2 같은 기종의 사진은 몇 배 이상 선명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사진이 주는 느낌까지 배가되는 건 아니지만.
△ 친구는 1963년 수상작 'Aid From The Padre(Hector Rondon)'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사진이 실린 엽서 몇 장을 샀다.
한편 글 초입에 썼던 고민이 고스란히 다가온, 꽤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전쟁으로 삶을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 군사무기에 의해 공격받은 민간인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등... 그런데 그것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 어제, 오늘, 지금 이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었다. 뉴스와 신문에서 본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그 참상이 너무도 명확히 떠올랐다. 이 사진들을 찍은 사진기자는 앞으로 그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시련은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쟁에 대해 그 사진기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무척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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