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첫 디지털카메라는 Canon Powershot A40 입니다. 아마 2002년 쯤에 약 40만원을 주고 샀던 기억이 나네요. 여러 카메라 메이커들이 초기 상용화 단계의 디지털카메라 제품들을 속속 내놓고, 국내에서도 막 디지털카메라와 관련 상품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였습니다. 200만화소, 3배 줌, 1.5인치 모니터, 기존 필름 똑딱이를 닮은 디자인 등 지금 기준으로는 한참 모자라거나 어설픈 기능들이었지만 그래도 꽤 오랫동안 사진 잘 찍고 잘 썼습니다.
몇 번의 기기변경을 거쳐 벌써 네 번째 디지털카메라를 쓰고 있지만, A40의 모습과 함께한 추억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결국 아닌 밤중에 플래시 터뜨려가며 이제는 많이 낡아 버린 A40의 모습을 찍었네요.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글을 이제 시작합니다.
▲ Canon Powershot A40. 캐논 파워샷 A10/A20의 후속으로 나온 A30/A40 형제 중 A40의 모습입니다. 똑같은 외형에 A30은 130만화소, A40은 200만화소로 출시되었습니다. 색깔도 A30은 산뜻한 하늘색, A40은 중후한 회색으로 나왔죠. 당시 제 친구는 A30, 저는 A40을 썼었습니다. 카메라를 샀을 당시, A40의 디자인이 '너무나도 카메라답게 생겨서' 골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전에 접해봤던 카메라가 달랑 코니카 팝이었던 저에겐, A40이 가장 '카메라다운 카메라'라고 생각되었던 거죠.
당시 캐논 파워샷에는 3개의 라인업이 있었습니다. 하이엔드 지향의 G시리즈, 스타일리시한 고급 컴팩트 지향의 S시리즈, 그리고 중간 보급형인 A시리즈가 그것이었죠. G시리즈는 수동기능, 밝은 렌즈, 외장플래시용 핫슈 등 고급 기능을 내세운 고성능/고가 라인업이었습니다. S시리즈는 G시리즈보다 다소 떨어지지만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 수동기능 지원으로 꽤 인기를 얻었죠. 여기에 저렴한 가격과 약간의 수동기능, 쉬운 사용법을 내세운 A시리즈가 파워샷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 Canon Powershot A40 뒷모습. 2000년대 초는 아직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커지기 전인지라 고를 수 있는 모델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입문자에게는 30~40만원대 컴팩트카메라가 많이 추천되었는데, 당시 니콘의 쿨픽스 2500(쿨이오)와 함께 많이 비교되던 것이 파워샷 A40(아사공)이었습니다. '접사와 회전렌즈에 끌린다면 쿨이오로, 화사한 색감과 수동기능을 원한다면 아사공으로' 하는 식이었죠. 그땐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화려한 색감과 수동기능에 이끌려 A40을 선택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컴퓨터 이미지 파일로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았죠.
▲ Canon Powershot A40 윗모습. A40은 컴팩트카메라였지만, 그립감은 꽤 좋은 편에 속했습니다. AA배터리를 무려 4개나 쓰는 바람에 그립을 두껍게 만들 수 있었죠. 지금의 컴팩트카메라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두꺼운 편인데, 상단엔 셔터버튼 하나만 붙어있습니다.
▲ Canon Powershot A40 바닥면. 바닥엔 배터리커버와 함께 삼각대 마운트가 있습니다. 마운트 부분이 플라스틱 재질로 된 건 다소 불만사항이었죠. 쇠로 된 삼각대 고정볼트와 만나면 플라스틱이 깎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A40의 바닥면은 꽤 평평하기 때문에, 삼각대가 없을 땐 그냥 바닥이나 돌 같은 곳에 올려두고 찍기도 했었죠.
▲ Canon Powershot A40 메모리슬롯. 옆에는 메모리슬롯이 위치해 있습니다. CF카드를 이용했는데, 번들로 들어있던 CF카드는 8MB짜리 샌디스크 제품이었습니다(위 사진 속 제품). 특이한 점은 카메라 내장 시계를 위한 배터리가 따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컴퓨터 메인보드의 단추모양 배터리와 비슷한 것이었죠. 이 배터리는 카메라의 시계는 물론 날짜, 환경설정 등을 저장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요즘 나오는 카메라들과 비교해보면 정말 특이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Canon Powershot A40 배터리커버. 전원으로는 AA배터리 4개를 사용했습니다. 알카라인 배터리는 일회용인데다 오래 가지도 못했기 때문에, 산요의 니켈수소(Ni-MH) 배터리가 많이 쓰였죠. 덕분에 집에는 산요 Ni-MH 1700, 1800, 2300, 2500, 2700 등 니켈수소 배터리가 잔뜩 쌓여있네요. 배터리 4개로 하루 정도는 충분히 썼던 것 같습니다. 배터리 소모를 줄이기 위해 LCD모니터를 끄고, 광학식 뷰파인더를 사용할 수도 있었죠. 실제 찍히는 사진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배터리가 간당간당 할 땐 참 유용한 기능이었습니다. 요새 나오는 컴팩트카메라들은 아예 광학식 뷰파인더를 장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죠.
▲ Canon Powershot A40 어댑터. A40의 또 다른 장점은 어댑터를 이용해 다양한 필터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렌즈 아래쪽의 레버를 누르고 은색 플라스틱 커버를 돌려서 빼면 위 사진처럼 어댑터 마운트가 나타나죠. 여기에 별매품인 전용 어댑터를 끼워 52mm 필터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A40 동호회를 가보면 A40에 ND필터나 크로스필터, 접사필터 등을 이용해 찍은 사진들을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 Canon Powershot A40 어댑터. 위 사진은 A40 전용 어댑터 + 52-55업링 + 55mm ND4 필터를 끼운 모습입니다. UV필터는 물론이고 위 사진처럼 ND필터, 또는 크로스필터, CPL 필터 등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캐논에서 A40 전용으로 별매되는 광각/망원 컨버터 렌즈도 있었는데, 실제로 본 적은 없네요.
한편 전용 어댑터가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비싸서 어댑터를 자작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국내에 처음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던 '자일리톨 껌' 통이 어댑터 마운트에 딱 맞는 크기였죠. 사포로 열심히 갈아내고, 칼로 잘라내고 해서 어댑터 대용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문구점에서 구할 수 있는 돋보기 렌즈를 끼워 접사필터처럼 사용했죠. A40의 접사성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도 썼던 것입니다.
▲ Canon Powershot A40 렌즈. A40은 35mm 환산으로 35~105mm에 해당하는 F2.8 짜리 3배 줌 렌즈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줌을 최대로 할 경우 F4.8까지 조리개가 떨어지죠. 전원을 끄면 자동으로 렌즈가 들어가면서 렌즈 앞 커버까지 닫히는 구조라 별도의 렌즈 캡 같은 건 필요 없었습니다. 무난한 화각이긴 했지만, 꽤 괜찮은 렌즈를 쓴 탓에 200만화소임에도 불구하고 화질은 좋았습니다. 줌은 엄지손가락 닿는 곳에 있는 버튼을 이용했는데 속도가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습니다.
▲ Canon Powershot A40 수동모드. A40의 모드 다이얼은 다섯 가지 촬영모드와 재생모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Auto, ISO와 화이트밸런스 등을 지정할 수 있는 P, 셔터와 조리개를 모두 수동으로 조작하는 M, 파노라마 사진을 만들 때 쓰이는 스티치, 그리고 동영상 모드가 그것입니다.
수동모드에서는 15sec~1/1500sec까지 셔터스피드를 조절할 수 있는데, 조리개는 좀 특이했습니다. 조리개 스텝이 딱 두 가지밖에 없었던 것이죠. F2.8 또는 F8.0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실제로 조리개가 조여졌던 게 아니라 광량을 줄여주는 ND필터 같은 걸 이용했던 것 같네요. 물론 야경에서의 빛갈라짐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조리개가 원형이었거든요. 덕분에 야경사진에서의 빛갈라짐을 원했던 분들은 크로스필터를 이용해 효과를 주곤 했습니다.
▲ Canon Powershot A40 감도설정. 감도는 ISO50에서 400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만, 실제로는 ISO50이 일반적인 ISO100에 해당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에 비교해보면 노이즈 처리 기술이 많이 모자랐습니다. A40은 최대 ISO400을 쓸 수 있었지만, 노이즈 때문에 200도 겨우겨우 쓸 정도였죠. 지금은 컴팩트카메라들도 ISO800 정도는 우습게 씁니다. 기술이 정말 많이 발전했죠.
▲ Canon Powershot A40 스티치모드. 재미있는 기능으로 '파노라마 촬영 모드'를 탑재했습니다. 모드다이얼을 '스티치모드'에 두고, 회전할 방향을 지정한 다음, 차례차례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 것이죠. 방법도 매우 쉬워서, 겹쳐지게 찍어야 할 부분을 LCD에서 표시해 줍니다. 물론 카메라 내에서 파노라마가 자동으로 생성되었던 건 아니고, 나중에 번들 프로그램 중 하나인 '포토스티치'를 이용해 붙여야 했습니다. 요새 나오는 카메라들은 그냥 들고 돌기만 해도 파노라마가 찍히니, 정말 놀라운 기술발전이 아닐 수 없지요.
▲ Canon Powershot A40 화이트밸런스 설정. 여섯 가지 화이트밸런스 모드 중에 고를 수 있었고, 커스텀 화밸도 지원했습니다. 포커스는 AiAF와 가운데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었죠. AiAF는 '인공지능 오토포커스'라고 불리는 기능으로, 화면에 9개의 포커스 존을 두고 카메라가 알아서 포커스를 맞추는 방식입니다. 나름 꽤 선전했던 기능이고 A40 전면에도 작게 'AiAF'라고 박혀있지만, 그 성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가운데 측거점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정상적인 사진촬영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전원은 들어오는데… LCD도 이상하고 셔터 부분도 이상하네요. 아마도 몇 년간 죽어라 혹사당한데다 만들어진 지 오래되어 그렇겠지요. 그래도 A40으로 찍은 제 추억들, 사진들은 CD에 구워져 보관되고 있습니다. 다음엔 A40으로 찍은 사진들을 좀 열어봐야 겠습니다. 벌써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사진들, 지금에 와서 보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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