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블로그 포스팅이 뜸했죠? 집에 환자가 생겨 병원을 오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제 얼추 일이 잘 마무리되어 간단히 그 기록을 남겨봅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희귀한 경우라 하던데 아무튼 잘 해결되었습니다. 수술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회복도 빨리 이루어졌습니다.
아래 내용은 어디까지나 환자 보호자로서 보고 들고 경험한 것들을 적어둔 것이니, 의료행위나 자가진단 등에 참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 증상 발현과 응급실
작년 여름 쯤,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환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한두시간 뒤 다시 힘이 돌아왔고, 단순히 힘든 일을 해서 생긴 순간적인 증상으로 치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두어 번 정도 같은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때도 힘든 일을 해서 근육이 놀랐나보다 정도로 넘겼습니다.
해가 바뀌고 올 겨울, 또다시 같은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힘든 일은 커녕 일상적인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쉽게 일어나지 못해 지역병원 응급실로 이송했습니다.
응급실에서 CT촬영을 했으나 이상징후는 없었고, 뇌경색이나 뇌출혈 등의 징후도 없었습니다. 누운 상태로 다리에 힘을 줘서 들어올리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일어서지는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몇 시간 뒤 힘이 돌아와서 퇴원했습니다. 응급실에선 이런 경우를 처음 본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 했습니다.
2. 어렵게 찾은 원인과 진단
올해 2월, 지역 종합병원에 방문했습니다. 신경 이상인가 싶어 우선 신경과에서 진료를 봤습니다. 여러 번의 MRI 촬영 끝에, 척수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척수염이 의심된다고도 했는데 아무튼 이 병원에선 어렵겠다 하더군요. 결국 더 큰 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3월, 근처 대학병원에 방문했습니다. 여기서도 우선은 신경과로 갔습니다. 또 MRI 영상을 엄청나게 찍었죠. 그런데 의사선생님 말로는 이상하다고 합니다. MRI 영상에 뭔가 이상이 있는 걸로 나오는데, 이게 척수염이라면 엄청 심각한 경우라는 거죠. 즉 이정도로 진행된 척수염이라면 환자는 이미 누워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도저히 혼자 두발로 걸어다닐 수 없다는 거죠.
보다 자세한 검사를 위해 아예 입원해서 검사를 반복했습니다. MRI와 혈관조영술 등으로 확인한 결과, 동정맥기형이라는 진단이 떨어졌습니다.
그림 : 국가건강정보포털 http://health.mw.go.kr/HealthInfoArea/HealthInfo/View.do?idx=7360
동맥과 정맥은 서로 직접 연결되면 안 되고 중간에 모세혈관을 거쳐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동맥과 정맥이 바로 연결되는 걸 동정맥기형이라고 합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알기 어렵고 선천적 결함에 의해 그럴 수 있다고 하네요.
모세혈관 없이 동맥과 정맥이 바로 연결되면 동맥의 높은 압력이 정맥에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정상적일 때 압력이 거의 없던 정맥은 높은 압력에 의해 부풀어오르게 되죠. 환자의 경우 하필이면 동정맥기형이 생긴 곳이 등쪽 척수 옆이라, 부풀어 오른 정맥이 척수를 눌러 정상적인 척수 활동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하반신 활동이 부자연스럽고 다리에 찬 기운을 느꼈던 거죠.
그림 : 국가건강정보포털 http://health.mw.go.kr/HealthInfoArea/HealthInfo/View.do?idx=7360
3. 시술로 처치 시도
병원에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으나, 시술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좀더 큰 대형병원에서 혈관에 카테터를 삽입해 동정맥기형이 나타난 곳에 접착제를 붙여, 문제가 된 혈관을 막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다시 서울의 대형병원 영상의학과에 방문했습니다. 혈관조영술을 통해 문제가 된 부분을 확인하고, 카테터를 삽입해 처치를 시도하였습니다. 허벅지 혈관을 통해 문제가 된 등쪽 혈관까지 올라갔으나, 중간에 혈관이 이상하게 꼬여있어 결국 카테터를 넣지 못했습니다. 결국 시술은 실패하고 다시 수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도 혈관조영술 등을 통해 문제부위의 자세한 영상을 얻은 것은 나름대로의 수확이었습니다.
4. 수술과 회복
다시 대학병원으로 돌아와 신경외과에서 수술날짜를 잡았습니다. 약 4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수술은 등쪽 해당 부위를 절개하고 의료용 클립으로 문제가 된 혈관을 막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문제 혈관을 막자 정맥의 압력이 떨어지고 부풀어올랐던 부분이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척수에 가해지던 압력도 줄어, 척수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수술 중 모니터링 장비에 바로 상태가 좋아진 게 표시될 정도였다고 하네요.
절개된 부분이 아물 때까지 약 일주일 가량 입원해 있다, 금방 회복되어 퇴원했습니다. 환자의 말로는 다리에 돌던 찬 기운이 꽤 가신 느낌이라고 하네요. 물리치료사와 운동했을 때엔 발바닥이 뜨끈뜨끈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하반신에 피도 잘 돌고, 발걸음도 꽤 자연스러워진 모습입니다.
앞으로 3개월 정도는 조심해서 생활하고,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경과를 확인해야 한다고 합니다. 흔치 않은 케이스라고 하던데 운이 좋게도 잘 해결되었습니다. 모두 각 병원의 의료진 덕분입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위 내용은 어디까지나 환자 보호자로서 보고 들고 경험한 것들을 적어둔 것이니, 의료행위나 자가진단 등에 참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