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구설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구설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기상청은 '구라청' 찾아 지우느라 정신 없고, 내 가방 속엔 언제나 작은 우산이 들어있고.

by hfkais | 2009. 9. 9. | 9 comments

비오는 건 좋지만 비 맞는 건 싫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 따듯한 실내에서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을 보고 땅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가로이 취미생활을 즐기는 건 좋지만,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그 비를 온몸으로 다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을 겁니다. 아, 물론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면 살짝 내리는 비를 한번 쯤 맞아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감기 걸리지 않을 정도로 비 좀 맞고, 뜨신 물에 목욕한 뒤 마시는 따끈한 코코아 한잔도 괜찮죠(허세 같아 보여도 비를 맞았으면 이 정돈 해줘야).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물에 젖은 생쥐마냥 비를 맞는 건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내가 탈 버스의 기사님도, 집에서 그 꼴을 보실 엄마도.

어떤 사람들은 밖에 나갈 때 꼭 가방을 들고 나가려 하죠. 굳이 가방이 필요하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가벼운 용무로 가도 가방을 꼭 챙기려 듭니다. 그리고 그 가방 속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들어있습니다. 손수건이라던가, 작은 메모장과 펜이라던가, 똑딱이 카메라라던가, 화장품이라던가, 뭐 그런 것들. 실은 저도 '밖에 나갈 때 가방 없으면 허전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제 가방 안엔 일종의 '생존 도구'들도 들어있죠. 교통카드가 고장 났을 때 쓸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통카드, 약간의 잔돈, 가끔 머리가 아플 때 먹을 두통약, 여행용 포켓티슈 등….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산. 서울 한복판에서 비를 맞고 돌아다닐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언젠가부터 제 가방 속에는 항상 우산이 들어있습니다(그렇다고 '좌 물통 우 우산'은 아니에요).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 기상청의 틀린 일기예보로 인해 낭패를 본 어느 날 이후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해가 쨍쨍해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도 무조건 들고 다닙니다. 분명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기상청 예보만 믿고 다니다 비 쫄딱 맞는 것 보단 조금이나마 낫다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요새 나오는 우산들은 무게도 가볍고 접었을 때 크기도 작아 항상 가지고 다녀도 별 부담이 되지 않죠)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장비가 아무리 좋아져도 자연 현상을 미리 예측하긴 쉽지 않은 법입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지요. 기상청에서 날씨를 예측하는 일도 분명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국내에서 몇 번째 가는 슈퍼컴퓨터를 쓰든, 500억이 넘는 슈퍼컴퓨터를 더 들여와 쓰든 결코 녹록치 않을 겁니다. 더구나 요새는 전세계적인 기상이변으로 인해 기상 예측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죠. 날씨 예보의 어려움을 결코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런데 기상청이 요새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기상청의 주요 업무인 '기상 예보' 때문이 아니라 '구라청' 때문에요. 기상청의 예보가 자주 틀리다 보니 일부에서 기상청을 '구라청'으로 부르기 시작했나 봅니다. 그런데 기상청 직원이란 분이 개인 블로그들을 찾아 다니며 '구라청'이라 쓰인 부분을 지워달라고 리플을 달고 있답니다. 실제로 달린 몇몇 리플을 보니, 아예 문구를 미리 만들어놓고 복사&붙여넣기로 열심히 리플을 다는 모양이더군요.

… (전략)
이 블로그 글은 확산과 파급효과가 클 것 같으니 "삭제" 좀 부탁좀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후략)

대체 무슨 확산과 파급효과를 말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리플 받으신 분이 꽤 되는 모양입니다.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기관이 저런 식으로 불리는 게 물론 유쾌하진 않겠죠. 하지만 왜 저렇게 불리고 있는지, 왜 저렇게 불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선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나 보군요. '기상청'이란 이름 대신 '구라청'이라는 속어가 쓰일 만큼 신뢰를 무너뜨린 게 과연 누군지에 대해 먼저 생각을 좀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구라청'이란 이름이 인터넷상에 돌지 않도록 열심히 막으려는 모양인데… 그럴 수록 더 빨리, 더 넓게 퍼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걸까요. 일반 블로거들이 처음 '구라청'이란 단어를 담아 글을 썼을 땐 그저 기상청의 기상 예보에 대한 불신과 불만 뿐이었지만, 이걸 다 지워버리자고 억지부리면 그 때는 기상 예보가 아니라 기상청 자체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생겨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생겨났을지도 모르죠. 기상청에서 수많은 '구라청' 글들에 일일이 삭제 요청 리플을 달고 있으니까요. 결국 스스로 불신을 조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오죽하면 '비싼 슈퍼컴퓨터로 기상 예측은 안 하고 '구라청' 글만 검색한다'는 소리가 나올까요.

 

관련 글 :

 


전체 내용 보기